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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봤던 이야기 및 할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잉모탈 2020. 9. 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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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전 한참 전자담배 모임에 열중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도 어김없이 일산에서 모임을 하고, 수다를 떨다보니 밤 11시경에 집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모임장소와 우리집은 속도 지켜서 운전하면 안막히고 약 3~40분 거리이다.

오늘 이야기를 쓰게 된 장소는 우리집 앞 산의 언덕길이고(아는 사람들은 대관령급이라 부르는 거지같은 길)

이러한 길이다.

시간은 대략 저녁 11시 30분~40분경이다.

에어컨을 틀고, 음악을 들으며 언덕을 올라가는 와중에 아래 사진의 장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의 언덕의 표지판(사진 상 왼쪽의 볼록 거울 근처) 옆에서 어떤 형체가

"느껴졌다."

그리고 순간 검은색 월남치마에 하얀 블라우스, 똑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보였고

그 여성의 얼굴은 마치 블랙홀처럼 검은 색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들렸다."

"죽어..죽어야 돼.. 지금 죽어야 돼.."

문제는 이게 귀에 들리는게 아니라 명확하게 머릿속에 말을 심는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순간적으로 소름이 돋아 풀악셀을 밟으며 대관령 뺨치는 그 길을 달렸다.

언덕을 내려가며 흘끔 본 내 차의 계기판은 80km근처.

평소 나는 차로 그곳을 내려갈때 50km 이하로 주행을 한다.

심지어 내가 타는 차는 구불구불한 길에 맞지 않는 뉴카렌스 08년식.

귀신을 본 지점부터 집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4~5분.

악셀을 밟기 시작하며 혹시 사람인데 잘못봤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백미러를 보니 그곳은 시커먼 어둠뿐이었다.

그 후로 나는 집에 와서 곧바로 침대에 누웠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밥도 제대로 못먹으며

약 3일 정도를 끙끙 앓았었다.

오자마자 어머니께 귀신을 봤노라 고하고 누운 후 약 3일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위에 쓴 귀신을 보기 약 3~4달 전.

위의 귀신을 본 장소에서 비슷한 시간에(그때도 역시 전자담배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봤다.

언덕을 올라오는 중 마주친(현재 그 자리에는 급커브 주의 표지판이 있다.)귀신은

초록색 민무늬 전투복과 소총(아마도 칼빈으로 추정되는?)을 들고 있는 스포츠 머리의 사내였다.

이것과 거의 같은 군복 상하의와 전투화였다.

그 사내는 나에게 위의 귀신과 마찬가지로 머릿속에

"정지."

를 외쳤다.

상대적으로 처음 작성한 귀신에 비해 정신적인 데미지는 적은 편이었고

그저 깜짝 놀랄 정도였던 듯 하다.

주변에 차가 전혀 없어서 그 귀신(?)을 지나치자 마자 차를 멈추고 내려서 연초(부끄럽다..)를 한대 태우며

그 장소를 봤다.

역시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왠지 무서우면서도 애매한 느낌이 들어 연초를 한대 다 태울때까지 그 자리에 있다가 집에 왔다.

첫번째 쓴 경우와는 다르게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몇년 후 직장에 다니면서 이 동네 토박이인 선배님들이랑(대략 60여세 전후이신)쉬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여름철에 걸맞는 으시시한 이야기 해본다고

귀신을 본 이야기(이 다음까지 3가지)를 해주었다.

내가 군인 귀신과 월남 치마 귀신을 본 장소의 아래쪽에 옛 북파공작원들의 신원미상 시신을 안치해둔

컨테이너가 있었다 한다.

그 이후로 선배님들은 지금까지 내가 귀신을 본 길은 잘 가지 않고, 우회해서 시내를 나간다 한다.

 

세번째는 텀이 좀 있다.

25살에 미진한 학업이 아쉬워 이태원에 소재한 한국 폴리텍 1대학-정수캠퍼스-야간대학을 다녔다.

낮에는 출신 모교(고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저녁에는 이태원 학교에 다니던 조금은 피곤했던 때이다.

오래되어 기억은 가물가물 하지만 계절은 여름에서 막 가을로 넘어가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학교 수업이 11시에 끝나고, 약 12시 무렵 집 근처 예의 그 장소(위에서 쓴 그 표지판 자리)에 도착했다.

아니 도착 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매형이 준 베르나 수동을 타고 다녔고, 기억상으로는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 노랗게 빛나는 민들레 씨앗 같은 것이 쑤욱 날아오더니

딱 이 모양인데 색만 노랗게 빛났다.

앞창문을 관통하고 들어와 내 차의 조수석에 탔다.(탔다? 앉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다급한 느낌으로

"눈 떠! 멈춰! 큰일 나! 죽어!"

라고 말했다.

문제는 머릿속으로 느껴지는거라 목소리나 성별, 나이대의 구분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그냥 내 상상으로 혼잣말을 하는것 처럼 그렇게 "들린다."

그리고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브레이크를 밟았으며 내 차는 반대 차선의 가드레일과

약 5cm도 안될 만큼의 공간을 두고 멈췄다.

그 가드레일의 바깥쪽은 완전한 낭떠러지이다.

그 자리는 이전에도 오토바이를 타시던 할아버지 한분이 떨어졌었고,

자동차가 떨어져 크레인이 출동하기도 했던 자리다.(이건 이 사건 이후이다.)

워낙에 굽이치고 블라인드 코너가 많아 위험하긴 하지만 그래도 몇년을 여기서 다니며

(심지어 난 운전 연습도 이 길로 시작했다.)눈 감고도 갈만한 길이라고 하며 다녔었는데

이때는 정말 식은땀이 흘렀다.

아마도 잠깐 졸고, 죽음을 향해 가던 중 누군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듯 하다.

역시나 골초였던 나는 황급히 차를 수습하여 언덕을 내려간 후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를 한대 태우고 들어갔다.

이 귀신(?)의 경우에는 상당히 착한 귀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귀신을 본 그 장소에는 현재 대규모의 납골당이 들어섰다.

 

여기부턴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꿈 이야기.

 

약 4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7일전(내가 꿈을 꾸던 때에도 멀쩡하게 생존해 계셨다.)

머리 뒤에 하얀 후광을 빛내시며 꿈에 나타나 내게 손짓을 하고 가셨다.

잠에서 깬 후 나는 어머니께 꿈 이야기를 하며 할머니가 계신 거제도에 가자고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바쁘다, 너 힘들다,(이때 막 지병이 도지기 시작한 상태였다) 6~8시간씩 운전하면 병 심해진다

라고 말씀하시며 다음을 기약하셨고, 나는 일단 할머니가 후광을 빛내며 나타나셨기에 좋은 꿈이라고 생각되어

어머니와 함께 연금 복권을 샀고, 결과는 꽝이었다.

그 7일 후 할머니는 진료받으러 가신 병원에서 의사와 상담 중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한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가슴이 좀 답답하다 하신것 외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어서

같이 동행하신 막내외삼촌도 그저 감기증상이겠거니 해서 같이 병원을 가셨다 하셨다.

상담 중 말씀을 하시다가 조용히 옆으로 쓰러지셨다 했고, 쓰러지시고 CPR그런거 없이

바로 임종하셨다 들었다.

외할머니가 생전에 엄청나게 신실한 천주교 신자셨는데, 아마도 덕을 많이 쌓아 승천하실 것을 예고하는

예지몽이 아니었나 하고 그 때 꿈을 들었던 이들은 생각한다.

그 당시 임종 전, 후로 아무도 할머니와 관련된 꿈을 꾼 사람이 없는데 나만 꿨다.

이건 구라라고 할 것 없이 이미 생존해 계실때 꿈을 꾸고, 어머니께 말씀도 드리고 그 이후에 돌아가신 것이라

어머니가 상당히 신기하면서도 소름돋아 하셨던(그리고 내 말을 안들어 마지막 모습을 못보신걸 평생 후회하신다.)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올해(2020년) 6월 18일 새벽 2시 아버지가 긴 병마 끝에 돌아가셨다.

추정되는 사망 시각은 새벽 1시 30~50분 사이.

돌아가시기 이틀정도 전 아침 식사 중에 갑자기 몸도 못가누시고, 식사도 거의 힘든 상태에 숨도 좀 힘들어 하셔서

병원 입원을 고민하던 차에 돌아가셨다.

바로 병원에 입원도 생각했으나 평소 아버지의 성정도 그렇고 해서 잠시 고민 하는 사이였다.

곧 돌아가시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리 좋아하던 어머니 곁에서 가는것이 좋지 않겠냐는게 

내 의견이었다.

내 의견은 일종의 호스피스적인 생각이었을까?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돌아가시기 약 6시간전 누나와 매형, 조카가 와서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누나도, 나도, 어머니도 못해도 일주일 이상의 시간은 남았다 생각했다.

누나와 어머니는 누나가 직접 상태를 봤고 병원 입원 날짜를 잡아보자고 하던 중이었다.

집이 가난해 누나가 돈을 보태주지 않으면 병원은 꿈에도 못 꿀 상황이었으니까.

매년 항상 고비였고, 항상 임사(심지어 수술 중 사망 선고도 1번 받아보신)인 상태에서도 잘 살아난 아버지였으니까.

누나가 가고 나서 호흡이 좀 불편해보여 내가 새벽 1시 즈음에 침대 시트를 앉는 자세로 올려드렸었고

2시에 침대 시트를 반쯤 누운 상태로 다시 내려드리러 나왔을때 이미 숨이 멎어있었다.

반개한 눈과 살짝 벌린 입....

나는 모습을 보자 마자 아버지가 운명하셨음을 직감했다.

당시 이마만 차가운 상태였고 이마 아래로 몸은 아주 따뜻했으며 가슴에 귀를 대봤을때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젊을적 기계로 된 인공 판막 수술을 하셔서 항상 "따각 따각"하는 시계 초침소리가 나는데

그것이 멎어있었다.

평소 CPR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느낌이 왔다.

이건 CPR도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 심장에는 페이스메이커도 달려있는데 이놈도 이미 손을 못쓸 상황이었겠지.

나는 즉시 어머니를 불렀고, 어머니 또한 주무시지는 않고 계셨기에 바로 와서 보시고

마구 통곡을 하셨다.

나는 즉시 119와 누나 및 형에게 전화를 걸고, 119의 지도에 맞춰 CPR도 하고 경찰과 연계 연락도 부탁하였다.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아버지를 확인 후 내게 CPR이 이미 필요없던 상황(즉사)이였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고인이 집에서 돌아가신 경우는 경찰 조사와 의사의 시체검안이 있어야 하기에 장례식장 이동은 불가했다.

새벽 4시경 사체 검안과 조사가 끝났고 장례식장의 스케쥴 문제로 6시경에 이동 하였다. 

예전에 아버지의 주치의가 30~40년 사이에 아버지의 심장 수명이 끝난다 했었는데 30년을 버티셨다.

3일장이 끝나고 요즘 유행(?)대로 산소에서 탈상을 하였다.

그 후로 며칠(이젠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적어도 7월이 되기 전이었다.아마 탈상 후 일주일이었던듯 하다)후

자면서 꿈을 꿨다.

빛으로 만들어진 하얀 공간에 현재의 내가 서있고, 돌아가시던 순간의 모습을 한 아버지가 마주 서있었다.

아버지는 무언가 말씀을 하시며(분명 꿈에서는 내용도 알아듣고, 대답도 해가며 들었다) 나는 그것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점점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며 돌아가시기 직전 모습에서 마지막에는 내가 알고있는

머리카락이 많은(ㅋ)아버지의 젊고 건강한 모습이 되셨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게 손을 흔들며 뒤돌아 가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꿈에서 깼다.

어머니가 잘 아는 스님께 여쭈니 아버지가 좋은곳으로 떠난 아주 길몽이라 하였다.

 

그 이후에도 지난달 자던 중에 아버지와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신 셋째 작은 아버지가 함께 꿈에 나왔다.

그리고 뭔가 엄청나게 심각한 얼굴로 내게 위험하니 조심하라 하고 가셨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낮에 나는 교통사고(차에 받힐뻔한것, 받을뻔한것)가 날뻔한걸 맞은편 차선까지 넘어가서 피한게 세번 있었고

집에 와서 어머니께 장난을 담아 툴툴거렸다.

괜스리 아버지랑 작은 아버지가 꿈에 나와서 오늘 위험했었나보다 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오히려 아버지랑 작은 아버지가 나 일진 사나워서 경고해주려고 나오신게 아닌가 싶다 했다.

그 이후로는 아버지가 꿈에 나오지 않고 있다.

 

위에서 썼듯이 아버지가 수술중 1번 사망 선고를 받으신 적이 있다.

그때 뇌 수술(청신경종)중이셨는데 의사가 나와서 아버지가 운명하신다 했다.

그 직후(1분도 채 안됐다) 수술실 안에서 호출이 있었고 의사가 뛰어들어갔으며, 

그 후 아버지는 살아서 나오셨다.

수술 직후에는 언어능력이 작살나서 말씀을 못하시다가 회복세에 들어가고 나서 내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스스로 분명 죽었다고 자각을 하고 올라가려는데

내가 침대 머리맡에서 아버지 팔을 잡고 매달리더란거다.(난 수술실 밖에 있는데?)

덕분에 안(못?)올라가고 다시 내려오셨단다.

네가 구한 목숨이라고 웃으며 말씀하시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그 이후로는 청신경종 수술 및 뇌출혈과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인한 치매와 착란증세가 와서

다시는 아버지와 정상적인 대화(후반에는 아예 대화를 못하셨다)를 못나눠봤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부터는 어머니가 일 하시느라 집에 안계셔서 내가 낮에 아버지를 돌봤다.

엄밀히 말하자면 돌봤다기 보단 간간히 기저귀 갈고, 간식을 드린다거나 어디 못나가게 감시하는 정도?

이미 치매로 인해 두번정도 아버지가 없어지고, 발견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돌아가시기 약 한두달 전의 아버지는 

내가 평생 본 적이 없던 온화한 웃음으로..내가 어떤 말을 할때마다 항상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특히 딱히 드릴게 없어 버터에 식빵을 구워 토스트를 해드렸을때 잘 되지도 어눌한 말투로

"으ㅓ아ㅏ덜 젼말 잘 머거써"

라고 하신게 이렇게 가슴에 남아버렸다.

그렇게도 원망하고 미워했는데..결국 사람은 마지막 모습이 남는것 같다.

아버지가 거동이 가능했던 마지막 날 내 방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우리집 가자, 우리집 어디야?"라고 하셨었는데

아버지는 평소 현재 살고 있는 파주 집을 싫어하셨다.

물론 본인이 몰래 샀고 큰아들이 저지른(?)사고로 인해 원치 않지만 살고 있는 집이라

멀쩡하셨을땐 집이 좋다 공기가 좋다 하며 좋아하셨지만

그거 다 뻥이다.

누구보다 도시를 좋아하고, 먹거리 찾으러 돌아다니는게 취미셨던 양반이 이런 마트하나 없는 시골이 좋긴..

결국 돌아가시기 얼마전 여기 싫다고 실토를 하시긴 했다.

생전에는 그렇게 미워하고, 언제 가시나 손만 꼽던 날이었는데

막상 가시고 나니..어머니께도 말은 못하지만 아버지가 많이 생각난다.

내가 차 태워서 나가면 그렇게 좋아하고, 마트같은데 모시고 가도 좋아하고..

생각해보면 소소한 것들도 참 좋아하셨는데 나란 놈도 어지간히 모질었는지

그걸 자주 해드리지 않았다.

물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사는게(특히 마음이)편해진건 사실이지만

낮에 혼자 마루를 바라보면 항상 누워계시던 아버지가 안계시다는게 조금..휑한 느낌이 든다.

혹시라도 사후 세계가 있다면 저승가서 아부지한테 생전에 잘못해서 미안하다 이야기는 해야겠다.

이렇게 급작스레 가실 줄 알았다면 좀 더 잘 간병하고 들여다봤어야 했다는 후회가 남긴 한다.

그래도 아버지의 마지막을 내가 봐서 다행이다.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본인의 사망은 나랑 어머니가(정확히는 우리 둘만) 보길 바랬던 것을 결국은 지켰으니 말이다.

아마도 내 추정으로 아버지의 사망은

그 거동이 불가능해진 날 심장 기계의 수명이 다 했고, 그 후 페이스메이커로 연명하다가

호흡 부전으로 돌아가신 듯 하다.

정황을 돌아보니 심장의 펌핑이 약해져서 혈류가 뇌에 잘 돌지 않고, 그래서 거동도 안되고

결국 뇌쪽이 먼저 죽어가며 외부 반응도 거의 없는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첫날은 왜 갑자기 이럴까, 평소 먹던 약이 뭐가 안맞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고

둘째날은 외부 반응(귀에 말해도 반응이 없지만 두유같은것은 빨대를 대주면 한 두 숟가락 드시는 상태)이

현저히 적어짐을 느껴 병원 입원 문제를 논의 하기 위해 가족 소집을 하게 되었고-형은 오지 않았다-

돌아가시던 마지막 날저녁은 내가 눈에 후레쉬를 비쳤을때도 반응이 없어서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을 했다.

생전에 죽을때는 병원가기 싫다고..이젠 병원 너무 지겨워서 그냥 집에서 죽고 싶다고 하신 아버지의 뜻도

어느정도는 감안했었다.

그래도 생전에 고생시킨게 미안해서였는지 가실땐 가족들 고생시키긴 싫으셨나보다.

사후경직도 상당히 늦게(장례식장 이송하기 직전까지 관절이 완전히 굳지 않아

내가 아버지 허리와 팔, 다리를 펴드렸다.)왔고 체온은 4~5시 사이에 완전히 차가워졌던거 같다.

다만 평소 안면 마비가 있어 눈을 완전히 못감으셨던게 아쉬웠는데 다행히 손으로 눈을 감겨드리는건 됐다.

돌아가실때도 아무런 소리나 반응 없이 조용히 돌아가셨다.

바로 옆에 누워계시던(주무시지 않았다 하시는데..아마 며칠 밤 샌 덕에 깜빡 졸으신게 아닌가 싶다)어머니 조차,

바로 옆방에서 문 열어두고 앉아있던 나 조차 모르게 정말 조용히 돌아가셨다.

평생을 병마와 싸워 크고 작은 수술만도 18여회고

내가 나가 있던 시기(20~31세)에 나한테도 연락 안한 죽을뻔한 적이 여러번 있으셨다 했다.

나 집에 왔을때도 와파린의 부작용으로 인한 출혈과다와 부정맥으로 인한 페이스 메이커 수술 등

하루도 그냥 지나간 날이 없었다.

치매 직전에는 광적인 착란으로 인한 폭력성과 허언(30억을 숨겨두셨단다)으로 고생했었는데

치매가 온 이후로는 말을 거의 안하시고(못하진 않았으나 스스로 말을 하지 않으셨고, 매우 반응이 더뎠다)

2번정도 착란으로 인한 탈주가 있었긴 하지만 

(한번은 차를 얻어타고 서울로 가셨다가 돈 없이 택시 타려 하셔서 택시기사에 의해 경찰에 신고되어 발견하고

돌아가시기 약 1달전 새벽에 아버지가 몰래 사라지셔서 경찰에 실종 신고 이후 혹시나 싶어 차로 찾아다니던

중 집 근처 풀숲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후 내 차에 돌진하셔서 발견했다.)

돌아 생각해보니..비록 금전적으로나 육체적으로는 많이 힘들었지만 치매 상태의 아버지와 함께한 때가 

아버지와는 가장 행복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물론 본인은 답답하고, 힘든 시기였으니 동상이몽이었겠지.

쓰다보니 여러 생각이 나서 글이 길어졌지만..

글로는 다 쓸 수 없는 여러 상황이나 사건들도 많아서 오늘은 오랫만에 천천히 곱씹어봐야겠다.

이후로 나와 어머니는 입맛도 돌아오지 않고, 무기력증과 허무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차츰 나아지겠지..

나아져야겠지.

요즘 확연히 글쓰는게 중구난방이고 뭔가 정리도 안되는게 머리가 굳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어차피 보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냥..언젠가 서비스 중지로 싸이마냥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그래도 남겨놓는 낙서장이다.

일기이고 포트폴리오며 낙서장이자 놀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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